여행을 가면 반드시 가보는 곳이 있다. 전통시장 그리고 그 거리에만 있는 커피숍. 전통시장에는 카메라를 들고 가고, 커피숍에는 기대를 들고 간다. 특히 여행지에서 맛보는 커피는 추억을 좀 더 선명하게 해 주는 것 같아, 그 여행지에만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주인장이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서 내려주는 커피숍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여의치 않다면 프랜차이즈만 아니면 된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업무차라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다른 동네를 가게 되면, 지나가다가 보이는 커피숍은 일단 들어가본다. 그리고 커피맛을 본다.


 



고맙게도 요즘엔 직접 커피를 볶고 추출해서 뽑아주시는 커피숍들이 많이 생겨서 주인장이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맛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운이 좋으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직접 공수해오신 커피 자루와 볶는 기계 등도 구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커피 전문가라든지, 커피맛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뜨면 빈 속을 믹스커피로 달래며, 하루에 커피를 좀 많이 마시는 듯 하다 싶으면 동네 마트에서 사 온 생강차를 즐긴다. 다만, 이상하게도 거리로 나가기만 하면 커피가 생각난다. 그것도 아메리카노만. 다른 커피는 이상하게 매력을 못 느낀다. 굳이 변명을 대자면, 아메리카노 동일 품목(?)으로만 커피를 즐겨야 동네마다 거리마다 다른 커피맛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허세라고나 할까...



사실, 내가 아메리카노만 찾는 이유는 커피 종류는 아메리카노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라떼라든지, 카레멜마끼야또라든지 하는 이름이 어려워서도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심플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도 심플하고, 마시기도 간단하고, 가격도.... 운이 좋으면 1500원이나 비싸야 3000원 정도면 즐길 수 있으니 가성비도 뛰어나다. 특히 나의 아메리카노에는 절대 시럽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아메리카노 본연의 맛을 해칠 수 있다는 우아한 이유도 일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살찔까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쓴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커피도 쓴 맛이 왠지 나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화려하고 달콤한 것과는 좀 다른 이미지라서 커피도 단순한 아메리카노를 찾는 듯 하다. 하지만 단순하다해서 수준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니, 장담하건데,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집은 다른 메뉴들도 분명 맛있을 것이다. 마치 김치맛이 좋은 식당은 설렁탕도 맛있듯이.


 



사실 나도 한 때는 볶은 원두를 직접 사다가 그라인드로 갈아서 내려서 마시곤 했다. 왠지 분위기 있는 커피매니아가 된 듯 해서 처음 몇 번은 귀찮아도 진정한 커피맛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정도 노고를 해야한다는 모종의 의무감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한 수고와 시간이 너무 오래다는 생각에 이번엔 좀 간편하게 갈아진 커피가루를 사다가 여과지에 내려마셨다.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맛도 오히려 더 나은 듯 하다. 왜가 왜 굳이 그라인드로 갈아가면서 마셨는지.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커피를 마셔본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아무리 커피 가루가 좋고 잘 여과해서 마셔도 커피숍 머신이 강한 압축으로 꾸욱 눌러 내려 준 커피숍 아메리카노의 맛을. 이렇게 커피에 관한 글을 쓰는 나 자신은 아직 전문가께서 내려주신 핸드메이드 커피는 맛을 보지 못했다. 직접 물조절을 해가며 내린 커피맛도 정말 좋다고 하는 데, 아직 그 경지는 아니다. 그저 일반 가정에서 내린 커피보다는 커피 머신에서 꾹 내려 준 커피맛이 훨씬 깊고 진하다는 것 정도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집에다가 고가의 커피머신을 사 놓을 수도 없고.



한 때는 나도 약간 여유가 되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리스타 과정을 밟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일상의 여유라는 것이 워낙 많은 핑계와 불규칙의 연속으로 인하여 그럴싸한 합리화가 나를 위로할 뿐이다. 좋은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내가 직접 감독일 필요는 없듯이, 맛있는 커피를 위해 내가 굳이 바리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곳에 가면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는 것만 알면된다. 그리고 굳이 내가 아니어도 세상에 훌륭한 바리스타는 얼마든지 있으니. 그 분이 유명한 커피숍에 계시든, 동네 작은 골목에 위치한 커피집에 계시든... 일단 나를 위해, 그 시간만큼은 나만을 위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 주시는 모든 바리스타님들은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라 해서 모두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동일한 원료, 동일한 레시피로 제공되지만, 만드는 사람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도 결과물에는 항상 미세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프랜차이즈라 해도 여행지에 따라 맛은 다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맛 본 맛과 외국의 한 지점에서 맛 본 커피맛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나는 이왕이면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커피숍을 더 선호한다. 예상을 할 수 없는 맛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좀 더 진할지, 쓸지, 신맛이 날지...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고, 굳이 샷추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진한 맛과 향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엔 그래도 왠만한 프랜차이즈나 커피숍은 투샷이 기본이지만, 일부 커피숍에서는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연한 맛을 내는 곳도 있기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커피의 진하기를 물어본다. 미리 저희 매장은 기본 투샷입니다. 라는 문구를 적어놓으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그렇지않다면 일반적으로 샷추가를 하는 버릇이 있다.


 



해외여행지는 두 번이상 가기가 힘들지만, 국내 여행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예전에 들렸던 커피숍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왠지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당시 맛보았던 향과 맛을 기억할 순 없지만 느낌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아니면 개인적으로 그 거리를 가야할 때, 그 곳에 가면 그 커피숍에서 그 아메리카노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기대할 것이 있다는 것은 설레임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마다 거리마다 커피맛은 달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기억도 좀 더 오래 그 맛을 추억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급하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나를 위해 본인이 마시려고 방금 뽑아놓은 커피를 선뜻 내게 양보한 그녀에 대한 기억처럼.

+ Recent posts